20·30대 중소기업 근무자의 월평균 소득이 271만 원이라는 국가데이터처 수치를 처음 봤을 때, 계산기를 두드려본 적이 있다. 주거비 빼고, 생활비 빼고, 통신비에 보험료까지 제하면 손에 남는 건 60~80만 원 남짓. 이 돈을 3% 금리 적금에 넣으면 1년 뒤 세후 이자가 고작 만 원대다. 근로소득만으로 자산을 쌓겠다는 건, 체감상 모래밭에서 물 퍼 올리는 것과 비슷하다.
월급이 높으면 부자가 될까?
연봉이 올라도 자산이 안 느는 구조가 있다. 소득이 높아지면 지출도 따라 올라가기 때문인데, 이걸 ‘라이프스타일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흔히 “좋은 직장 가면 된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해 소비하는 시간과 비용을 따져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법시험 폐지 이후 로스쿨 3년, 의대는 본과 4년에 인턴·레지던트까지 합치면 10년 가까이 걸린다. 그 기간 동안 소득은 0에 가깝고, 오히려 학비와 생활비로 빚이 쌓인다.
그 시간에 일찍 사회에 나와 매달 50만 원씩 자산을 쌓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 연 7% 복리 수익을 가정하면, 10년 뒤 약 8,600만 원이 된다. 돈이 돈을 벌기 시작하는 임계점에 가까워지는 거다. 72의 법칙을 적용하면 연 7% 수익률 기준으로 자산이 두 배가 되는 데 약 10년이 걸린다. 시작이 빠를수록 이 복리의 눈덩이가 굴러갈 시간이 길어진다는 뜻이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자산형성에서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수익률이 아니라 시간이기 때문이다. 수익률 1~2% 차이보다 시작 시점 5년 차이가 최종 자산에 훨씬 큰 영향을 준다. 연봉 협상에 목숨 거는 것보다, 지금 당장 종잣돈 100만 원이라도 굴리기 시작하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캥거루족이 늘어나는 진짜 이유
30대 미혼 중 54.8%가 부모와 함께 산다는 통계가 있다. 고용 불황과 주거비 상승이 겹치면서 독립 자체가 어려운 시대가 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0~34세 중 캥거루족 비율은 53.1%를 넘어섰다. 이건 단순히 게으른 사람이 많아져서가 아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2025년 기준 30대 가구의 평균 자산이 약 3억 6천만 원이라고 하지만, 이건 부동산 포함 수치고 실제로 현금화할 수 있는 금융자산은 훨씬 적다. 전세보증금 빼면 순수하게 움직일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아 근데 이건 좀 다른 관점인데, 캥거루족 문제를 개인의 나태함으로만 보는 시선이 있다. 실무에서 보면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더 많더라. 취업 준비에 몇 년을 쏟고, 공무원 시험이나 대기업 공채에 올인하다가,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이건 아니다” 싶어서 방향을 트는 사람들. 문제는 그때쯤이면 자산이 제로에 가깝다는 거다. 준비 기간 동안 부모 밑에서 용돈 받으며 지낸 시간은 자산형성과는 정반대 방향이었으니까.
사교육비 27.5조, 그 돈의 행방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이 27.5조 원으로 집계됐다. 참여 학생 1인당 월평균 60만 4천 원. 이 돈이 아이의 자산형성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는 진지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공부에 유전적 영향이 있다는 건 이제 학술적으로도 꽤 밝혀진 이야기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대 하든 교수는 “공부 잘하는 유전자를 타고나면 더 높은 교육 수준에 도달하고, 그 결과 더 높은 소득과 자산을 축적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유전자 변이가 학업 성취에 미치는 비율이 약 35%라는 연구도 있다. 나머지 65%가 환경과 노력이니 유전이 전부라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여기서 당신이 한번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있다. 월 60만 원씩 사교육비를 쓰는 가정이 그 돈을 아이 명의 계좌에 넣어 자산형성을 시작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월 60만 원을 10년간 연 5% 복리로 굴리면 약 9,300만 원이 된다. 아이가 스무 살이 될 때 거의 1억에 가까운 종잣돈을 가지고 사회에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게 모든 가정에 맞는 정답은 아니다. 공부를 정말 잘하는 아이에게 투자하는 건 당연히 의미 있다. 다만 중학교, 고등학교 1학년쯤 되면 대부분 윤곽이 보인다. 그때 판단을 미루는 게 문제다.
자산형성, 실제로 어떻게 시작하나
“투자해야 한다”는 말은 쉽다. 문제는 뭘, 어떻게 하느냐인데 — 사회초년생이라면 정부가 깔아놓은 레일부터 타는 게 현실적이다.
2026년 6월에 출시되는 청년미래적금이라는 게 있다. 만 19~34세, 연소득 6천만 원 이하면 가입할 수 있고, 월 최대 50만 원 납입에 정부가 일반형 6%, 우대형 12%를 기여금으로 얹어준다. 3년 만기인데, 이전의 청년도약계좌가 5년이어서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반영한 결과다. 이자소득도 전액 비과세. 금리만 따지면 연 9%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도 빠뜨리기 아깝다. 예적금, ETF, 리츠, 채권까지 한 계좌에서 돌릴 수 있고, 서민형은 수익 400만 원까지 비과세다. 같은 상품에 투자해도 일반 계좌는 수익의 15.4%를 세금으로 떼는데, ISA는 그 부담이 확 줄어든다. 2025년 11월 기준으로 ISA 가입자가 719만 명, 예금액이 46조 5천억 원이라니까 이미 꽤 많은 사람이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둘 게 있다. 인터넷에서 “적금은 바보짓”이라는 말이 돌아다니는데, 이건 확답을 못 드리겠다. 맥락에 따라 다르다. 투자할 종잣돈 자체가 없는 사람에게 주식부터 하라는 조언은 위험하다. NH 올백 자문센터 김성희 전문위원도 “청년들은 월급에서 실제 투자 가능한 돈이 적은데 성급하게 공격적 투자에 나서 유동성을 잃기 쉽다”고 경고했다. 자산형성의 첫 단계는 화려한 수익률이 아니라 ‘잃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거다.
부모가 도와줘야 할 건 학비가 아니라 자산형성 습관이다
아이에게 돈을 주는 것과, 돈을 다루는 힘을 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예전에는 “부모가 집 한 채 사주면 된다”는 말이 통했다. 지금은 그 집 한 채 값이 서울 기준으로 몇 억을 넘기니, 부모도 줄 여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아니다. 아이가 초등학생 때부터 소액이라도 투자 계좌를 열어서 함께 운용하는 과정, 용돈 중 일부를 저축하고 그 저축이 불어나는 걸 직접 보여주는 경험 — 이런 게 진짜 자산 교육이다.
자산은 부동산이 됐든, 주식이 됐든, 채권이든 금이든 비트코인이든 종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자산을 ‘시간 위에 올려놓는 습관’을 일찍 만드는 거다. 자산이 일정 규모를 넘으면 그 자산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오히려 직업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돈이 있으니까 급하지 않고, 급하지 않으니까 좋아하는 일을 고를 수 있게 되는 구조. 직업의 귀천은 없다는 말이 있는데, 현실에서 그게 가능하려면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 여유의 출발점이 조기 자산형성이다.
결국 시간을 사는 것이다
높은 근로소득을 쫓느라 20대를 다 태우는 것과, 당장은 적더라도 번 돈의 일부를 자산으로 전환하며 시간을 확보하는 것. 어느 쪽이 맞다고 단정할 순 없다. 사람마다 조건이 다르니까.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자산형성은 시작이 빠를수록 유리한 게임이고, 그 시작을 미루는 대가는 생각보다 크다. 지금 당신의 통장에 남아 있는 그 얼마 안 되는 돈이, 10년 뒤에는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질 수 있다는 걸 기억해두면 좋겠다.
자주 묻는 질문(FAQ) ❓
사회초년생인데 월 30만 원도 투자할 여유가 없어요. 자산형성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5만 원이든 10만 원이든, 금액보다 ‘시작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청년미래적금은 월 납입 한도가 50만 원이지 최소 금액 제한은 낮은 편이고, ISA도 소액으로 시작할 수 있다. 금액이 작다고 의미 없는 게 아니라, 자동이체를 걸어놓고 그 습관을 3년만 유지하면 체감이 확 달라진다.
적금보다 주식이 낫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바로 주식부터 시작해도 되나요?
종잣돈이 없는 상태에서 주식부터 시작하는 건 리스크가 크다. 비상금 3개월치 정도의 안전 자금을 먼저 확보하고, 그 위에 투자를 얹는 게 순서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주식을 손해 보고 팔아야 하는 일이 생기면, 그게 진짜 손실이니까.
아이에게 자산형성을 가르치려면 몇 살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게 솔직한 답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용돈 관리를 통해 ‘쓰는 돈’과 ‘모으는 돈’을 구분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출발점이 된다. 중학생 이상이면 실제 소액 투자 계좌를 함께 열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핵심은 ‘돈이 시간과 함께 자란다’는 감각을 체험시키는 거다.
근로소득을 올리는 노력은 의미가 없다는 건가요?
의미 없다는 게 아니라,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소득이 높아지면 저축·투자 여력도 커지니 당연히 좋다. 문제는 높은 소득을 얻기 위해 자산형성의 골든 타임을 전부 소진하는 경우다. 둘 다 병행할 수 있으면 최선이고,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시간 가성비를 따져봐야 한다.